건축설계는 대화다
프랑스의 정치가 이자 미식 평론가로 유명했던 브리야 사바랭(1755.04.01.~1826.0202)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음식문화를 통해 인간을 이해해갈 수 있다는 표현으로 해석되며 그런 그의 통찰에 일견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이것을 우리 시대 집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로 바꾸어 적용해보면 “당신이 어떤 집에 사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의 모습을 공간의 형식으로 분류해보면 크게 단독주택, 공동주택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저마다의 세대가 독립적으로 각자의 집을 지어 사는 형태가 단독주택, 여러 세대가 대체로 균일한 형태의 단위 공간을 점유하며 군락을 이루어 사는 형태가 소위 아파트로 대변되는 공동주택이다.
집의 유형에 따라 무엇이 더 나은 집이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지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여러 다양한 집의 설계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과정에서 건축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거주자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설계 협의 과정이다. 횟수를 정해두지 않고 만족스러울 때까지 진행되는 이러한 협의를 통해 건축가는 거주자들의 생활조건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어떤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거주자에게 생활의 만족감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해소된 이후에야 비로소 설계방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수집된 다양한 정보와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공간을 점점 구체화하며 수없이 많은 도면과 건축모형, 3D 이미지로 공간을 구현하고 서로 확인해 나가면서 거주자는 집이 완공도 되기 전 집의 윤곽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거주자와 건축가의 설계 협의는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이 과정이 존재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집의 근간이 되는 기초와 뼈대를 이루는 콘크리트를 굳히는 것은 현장의 시간이 아니라 다름 아닌 설계의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순하게 방의 개수나 구조, 바닥면적 그리고 예산 정도를 논하는 수준이 아니다. 집의 위치부터 공간의 넓이와 부피, 동선의 형성, 생활양식, 설비 수준, 선호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 사용 재료 정도의 큰 윤곽이 결정되고 세부설계에 들어가면 결정할 사항은 더 많아진다. 조명의 색온도, 조경 식재의 종류나 형태, 콘센트의 위치, 손잡이의 재질, 유리두께, 단열의 수준, 집에 놓을 가구의 디자인과 가전의 종류 등 이 지면에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내용 들을 논의하며 하나하나 결정해 나가고 집의 세부적인 완성도를 높여간다. 각자 다른 생활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특수성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 계단이 있으면 낮은 높이에서 잡기 쉬운 재질의 난간을 추가로 설치하고, 밝은 조명에 거부감이 있는 경우 간접조명의 비중을 높이며, 정원조성이나 남다른 취미가 있는 가족 구성원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조성하기도 한다.
필자가 최근에 수행했던 지산동 주택과, 영천 주택의 경우 또한 충분한 설계 기간과 여러 협의 과정을 거쳐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담아낸 환경을 구현할 수 있었다. 가용면적이 겨우 62.73 제곱미터(19평)에 불과한 좁은 부지에 세 식구를 위한 넉넉함과 개성을 갖춘 생활 공간을 만들어내고, 삼 형제를 둔 젊은 부부에게 층간소음 스트레스와 활동의 제약이 없는 놀이 공간이 있는 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설계적 대안들을 건축주에게 제안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은 오직 그들 가족만을 위한 맞춤형 셸터로서 기능하며 그간의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따뜻한 온기를 머금으며 매일 저녁 집 주변을 밝히고 서 있다.
생활하는 이들을 위하여 가능한 요구사항들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로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덜어내는 것을 권유하는 등 균형감 있는 조율 또한 건축가의 몫이다. 마당이 이미 충분한 집에서는 옥상이나 다른 외부공간을 생략하여 관리적인 수고를 덜어내도록 하고, 무조건 면적 수치가 넓기만 한 집을 만들어 예산을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할 때는 적정한 넓이에 개방적인 시야와 공간감을 지니도록 하여 초기 예산 범위에서 집이 구현될 수 있도록 조정하기도 한다. 설계 완료 후 시공자가 주도하는 공사 과정에서도 건축가는 감리업무를 수행하며 조정자 역할로 집이 문제없이 완공될 수 있도록 관여한다.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자는 계약을 통해 상식과 신뢰를 기반으로 집 짓기를 수행하는 원팀이다. 이러한 구도는 단독주택을 짓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집의 환경을 이루는 물리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공급자가 더 많은 것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는 어떠할까. 아파트로 대변되는 집합 주거 공간들은 설계와 시공의 과정에 있어서 거주자가 설계 협의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분양주택은 사업의 특성상 이미 만들어졌거나 만들기로 한 상품(집)의 개요만을 참조하여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는 부단히도 공급 위주로 설계된 사업인지라 수요자(거주자)의 권리는 사실상 ‘내가 그 집을 구매할 수 있다’ 는 권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파트는 부동산과 경제적 관점에서는 공급성, 효율성, 환금성이라는 선명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에 빠르게 침투해왔다. 광주광역시만 하더라도 주거비율에서 아파트의 비중이 80%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주거문화의 질이 증진 되거나 높은 생활만족도를 누리게 됐는지는 의문이다.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빈번한 사회문제로 거론되는 층간소음이나 주차를 포함한 여러 관리문제 등 다양한 생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삶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물론 좀 더 프리미엄한 사양의 주택들이 새로운 상품성을 갖추고 또 다른 수요를 창출해 나가며 이 시장을 견인해 나가겠지만 정작 중요한 거주자의 생활양식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어진 집이라기보단 말 그대로 더 높은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상품으로서 진화해 나가는 모습일 뿐이다. (아무리 분양 광고의 화려한 수사로 시선을 돌리려 노력해도 소품종 대량생산*아파트의 핵심이 거주 만족이 아닌 생산 효율이라는 점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 아파트 입주 전 입주 인테리어를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현상을 보면 건축가로서 묘하고 기이한 감정이 든다. 이제 막 완성된 집의 마감재를 뜯어내어 치장을 새로 하거나 조명을 다 바꾸고, 쓰지도 않을 벽을 만들었다가 철거해 내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몇 동 몇 호로 불리는 것 이외에 내 집이라고 특정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나의 취향을 배려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벌어진 일이라고 이해하면 이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최소한의 자기화가 이루어진 공간에서 거주자는 호감과 안정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는 기존의 공급방식과 달리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주택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하여 건축기획단계에서부터 설계와 시공 사후관리까지 면밀한 계획을 수립하여 거주자 저마다가 원하는 환경을 구현할 수 있도록 집을 설계하고 모여 사는 미덕까지 담아내는 협동조합 주택방식이 그러하고 꼭 협동조합이 아니더라도 입주 예정자들과 건축가가 협심하여 모든 단위세대의 유형이 제각각으로 디자인된 모여 사는 집을 만들어 건축계의 이목을 끌은 사례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기존의 방식에 비하여 더 많은 시간과 설계 협의 및 조정의 과정이 있었음은 자명하겠다. 하지만 집의 본질을 잊지 않으면서도 모여 살기의 장점을 두루 담아낼 수 있어 바람직한 사례라 생각된다. 이렇게 모여 사는 집은 설계 과정에서 갈등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거나 입주 예정인들 간 협의를 통해 갈등을 제어하는 방식을 체득하였을 확률이 높다. 마치 이상적인 사회의 일부를 보는 것과도 같다.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생활한다면 학원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다양한 간접적 사회 교육을 통해 머지않아 공동체의 이로운 자원이 될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 중 어떤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주거의 본질적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그래서 내가 살고자 하는 곳을 살 것인가 지을 것인가는 큰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신중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여기에서 본질 이란 집을 짓는 과정에서 공간의 구조나 세부적인 사양들을 결정함에 있어서 거주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가 원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대로 맞추어 사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바를 조성하여 사는 사람의 거주 만족도의 차이는 적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단독주택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급격히 커지고 있음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동안은 제한된 생활 공간 안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외부에서 충족할 수 있었지만, 사회 전반으로 외부활동이 억제되면서 생활 공간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구현할 수 있는 맞춤형 공간의 필요를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상은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집을 지을 위치부터 고민해 보자. 도시가 시골보다 덜 낭만적이지도 않고, 시골이 도시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지도 않는다. 집의 규모가 작다면 개성을 더하여 만족하는 방법을 찾고, 천편일률적인 거실 중심 구조를 탈피하여 좀 더 나다운 일상을 디자인해보자.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태양광발전 설비와 전기차 주차장을 구비한 주차장을 만들고 재활용 자재를 활용한 집을 지어 지구환경보존에 일조할 수 있다. 집을 지으면서 가치관까지 투영할 수 있으니 더 의미 있어질 것이다.
모든 예비 건축주들이 자신들이 살고자 하는 거주환경을 직접 상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되어야 우리가 사는 풍경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 무미건조한 ‘아파트 숲’이라고 불리게 된 우리 도시에 나무를 심어 숲을 키워왔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였다. 다양한 주거문화가 도시를 채우고 그렇게 만들어진 풍경을 그려본다. 그 도시는 더 이상 획일적인 아파트 숲을 이루며 건조하고 개성 없는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나무와 풀들로 다채로워진, 살고 싶고 거닐고 싶은 기분 좋은 숲이 될 것이다.
출처: 광주일보 문화예술매거진



